섹시 보이스 앤 로보 1화에 인용된 시


2분기 일드 "섹시 보이스 앤 로보" 1화 중 멋진 시가 나오길래 찾아봤더니, 쿠로다 사부로(黒田三郎)의 시, '그저 지나가기 위해 (ただ過ぎ去るために)' 의 일부였다. 인생의 애환이 느껴지는 시로구나... ;ㅅ; 그래서 전문을 해석해 보았다. 원문은 여기에서 >>


그저 지나가기 위해

1.

월급날이 지나
열흘이 되니
가난한 봉급생활자의 생각은 모조리
다음 월급날로 집중해 간다
달력의 좀 깨끗한 종이를 난폭하게 뜯어낸다
앞으로 19일, 앞으로 18일이라고
그것을
단지 뜯어내면
전부 좋아질 것처럼

그 후로 벌써 10년이 된다!
인양선의 기름 투성이 갑판에
맨발로 서서
언제까지고 수평선의 구름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앞으로 2주 정도면
어릴적 걸었던 고향 길을
한번 더 걸을 수 있어」라고

그 후로 벌써 1년이 된다!
잡목 숲의 나뭇가지가 푸른 싹을 이어낼 무렵
왼쪽 폐가 반쯤 잘린 나는
병원의 침대 위에서 생각했던 것이다
「앞으로 2개월 정도면
풀내음 숨막히는 뒷산의 오솔길을
한번 더 자유롭게 걸을 수 있어」라고

세월은
그저
지나가기 위해
있는 것처럼


2.

넌 생각나지 않느냐
정확히 5분의
마지막
면회 시간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무엇 하나 하지 못하고
포켓에 손을 질러 넣고
또 손을 빼고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것을
그저
그것만을
온몸으로 느끼며
빤히 지나가게 맡겼다
그 5분간을
허술한 판자 벽의 살풍경한 나뭇결
반쯤 열린 작은 유리창
잎 없는 포플러 가지
그 위에 아름답게
무의미하게 떠올라 있는 하얀 구름
모든 게
태연하고
무자비하게
침착함을 털어낸 가운데
그 때
미지근한 바람과 같이
시간이 네 안을 흘렀다


3.

파칭코 가게의 인파 속에서
더러워진 손을 하고
조용한 밤의 마을로 나올 때
그 미지근한 바람이 내 안을 흐른다
얇은 월급봉투와 빈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고
역 앞 광장을 성큼성큼 가로지를 때
그 미지근한 바람이 내 안을 흐른다

「지나가지 않고서는
그게 무엇인지 모를 어떤 것
그게 무엇인지 알았을 때에는
이미 잃어버리게 된 어떤 것」

아니 그게 아냐 그것만이 아냐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더라도
빤히 지나가게 맡길 수 밖에 없는 어떤 것」


4.

작은 불안
손 끝에 박힌 장미 가시 만큼 작은
작은 불안
밤 늦게 방에 돌아와
넌 중얼거린다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어
무엇 하나」

다다미 위에는
아침, 나갈 때 벗어 던진 셔츠가
벗어 던져진 채의 모습으로
식탁 위에는
아침, 먹다 남긴 빵이
먹다 남겨진 채의 모습으로
벽에는
더러워진 잠옷이 흉하게 매달려 있다

처와 아이에게
나들이옷을 입히고
조촐한 선물을 들려
몇 년만에 고향에 놀러 보내고
3일째


5.

너에게는 문득 내일이 보인다
내일 모레가....
10년 앞이
벗어 던진 셔츠의 모습으로
먹다 남긴 빵의 모습으로

네 조촐한 집은 아직 서지 않았다
네 처의 손은 거친 채
네 딸의 학비는 부족한 채
작은 꿈은 작은 꿈인 채로
네 안에

그 모습 그대로
흉하게 매달려 있다
퇴색하며
반쯤 무너져 가며...


6.

오늘도
당연한 듯한 얼굴을 하고 너는
통근 전철의 좌석에 앉아
아침 신문을 펼친다
「죽음의 재에 떠는 일본국민
정치적 폭력에 지배되는 민중」
너도 그 중 하나

「내일 일은 누구라도 알지 못해」
널 불안과 공포의 수렁에 떨어뜨린다
위험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그런데도 넌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신문을 덮는다
타인에게 발을 밟힐까
지갑을 소매치기 당할까
당하지 않는 한 누구든
당연한 듯한 얼굴을 하고
좌석에 앉아 있다
손잡이에 매달려 있다
신문을 펼친다 신문을 읽는다 신문을 덮는다


7.

미지근한 바람처럼 흐르는 것!

닫혀버린 마음의 빈 방 안에서
그것은 한없이 퍼져 간다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무엇 하나 하지 못하고
빤히 지나가게 맡겼다
그 5분간!
5분은 한시간이 되고
하루가 되고 한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
한없이 그것은 퍼져 간다

빤히 지나가게 맡겨져 있다
터무니 없이 중대한 무언가
무언가

내 눈에 점점 크게 다가온다
더러워진 잠옷
벽에 흉하게 매달려 있는 것
내가 벗고, 내가 또 몸에 걸칠 것

(시집 '말라버린 마음(いた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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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ars | 2007/04/15 21:52 | 이것이忍生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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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javaopera의 블로그 at 2008/02/08 23:50

제목 : 쿠로다 사부로 '그저 지나가기 위해'
쿠로다 사부로(黒田三郎) 'ただ過ぎ去るために''섹시 보이스 앤 로보' 1화에 등장하는 쿠로다 사부로의 시를 들으며 로보는 '섬뜩하다'라는대사를 합니다. 저도 그 시를 들으며 세월이 흘러간다는 잔혹함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작년 한해 힘든 여러 일을 겪으며 이 시가 계속 머리 속에서 떠올려지더군요. 5.너에게는 문득 내일이 보인다お前には不意(ふい)に明日が見える내일 모레가....明後日が・・・・・10년 앞이十年先が벗어 던진 셔츠의 모습으로脱ぎ......more

Commented by inu at 2008/03/24 04:15
로보에 감동해서 시마져 외워볼까 하고 검색하다 들렀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해요..
Commented by minimars at 2008/03/24 12:27
정말 재밌게 본 드라마였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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